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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식 장례 절차 안내 - 기독교 장례식의 장점

by 주목자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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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홀로 교회를 다니시다가 돌아가시면 맨 먼저 상주되시는 가족에게 장례식을 안 믿는 식?(비기독교식)으로 할건지 기독교식으로 할건지 물어봅니다. 가족들이 평소에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기독교식으로 한다고 하면 교회에서 전적으로 장례식을 치러드리고 가족들이 싫어하면 장례식 참관만 해드립니다.

 

 

기독교식 장례식을 하면 좋은 이유!

일단 장례식 분위기가 초상집 같지 않고 평화롭고 은혜로워요. 천국으로 보내드리는 환송잔치니까요. 내세가 있다 없다 논쟁하지 말고 있다고 믿으면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좋겠어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녀들과 친지분들이 장례식을 통해 감명을 받고 기독교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그리고 며느리들이 좋아해요. 왜요? 글쎄요. ㅎㅎ

 

>> 기독교식 장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사님의 집례 아래 진행됩니다.


망자의 영혼을 운명 순간부터 찬송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 맡기는 예식입니다.
은은하게 찬송가가 흐르고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됩니다. 운명한 시신의 수시(고인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힘)부터 목사님이 하며 장례식 전날 염습을 하고 입관하는데, 이때에도 목사님의 집례 아래 예배를 드립니다. 기독교식 장례식에서는 분향을 하지 않고 헌화를 합니다. 상주, 유족, 친지, 조객의 순으로 한 송이씩 헌화하지요. 장례식도 물론 예배로 거행되는데 장지에 도착하면 또 하관 예배를 드려줍니다. 그 후 상제들이 관 위에 흙을 뿌리고 봉분함으로 끝이 납니다.


 

 

 

 

기독교식 장례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임종식(臨終式)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殞命)이라 하고, 일가 친척이 운명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한다. 인간의 죽음은 신학적 이론으로 개인적 종말론에 해당된다. 개인적 종말론은 인간 개인의 육체적 사망과 사후의 상태를 논하는 것이다. 물론 죽음이 죄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지만, 신자에게 죽음은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되고, 또 괴로운 세상을 떠나 다시 죽음도 없고 저주도 없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영생을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캘빈은
"만약 하늘나라가 우리의 조국이라고 한다면 이 땅이야말로 망명(亡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요, 최고의 기쁨이요 복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잘 알아듣게 타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죄의 고백,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용서받음을 확신하게 하며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분명히 보여주어 죽음을 두려움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어야 한다.
교역자가 죽음에 임박한 교우를 돌보려 한다면 의식이 분명할 때 심방하여 신앙의 확신을 갖게 하고, 혹 기력이 쇠하여 언어구사가 곤란할지라도 그 순간은 많은 말이 필요없고 한마디의 상징적인 언어나 몸동작으로라도 신앙의 확신을 그의 의식 속에 불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소망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찾아 들려주고, 조용하고 은혜로운 찬송, 특히 본인이 즐겨 불렀던 찬송으로 마음의 평안과 소망을 주어야 한다.

또 임종 직후에는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 있는 유족들과 친척들을 위해 위로의 말씀과 찬송으로 슬픔을 소망으로 이길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에 목회자는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 고통 중에서도 약해지지 않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믿음 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돕는 것을 목적을 두어야 한다.
한 생명의 마지막을 돌보는 것은 한 생명의 영원한 승리로 인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순간이다. 돌봄의 실수로 본인과 가족에게 슬픔을 주지 않도록 어떤 일보다 먼저 시행해야 한다. 환자가 숨을 거두어 운명하게 되면 시신을 정성껏 처리하고, 시상 위에 안치하여 흰 천으로 덮어서 서늘한 곳에 모신 후 병풍으로 가리고, 그 앞에 깨끗한 탁자를 놓고 위에 고인의 영정과 유품 등을 놓는다.

 



<임종 예배식순>
개식사 : 집례자
신앙고백 : 다같이
찬송 479 장 : 다같이
기도 : 맡은이
성경봉독 / 눅 16:19-31, 약 4:13-17 : 집례자
위로의 말씀 : 집례자
찬송 480 장 : 다같이
축도 : 목사


2)입관식(入棺式)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여 한 몸이 된 유지체들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자기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도와주며 고통을 받는 형제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영광과 기쁨도 함께 누리는 것이다. 한 인간의 죽음도 충격적이지만 그 모습(흔적)을 다시는 볼 수 없게 입관하는 일은 더욱 슬픈 일이다. 이와 같이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운 일들을 당했을 때에 교회와 목회자는 모든 정성과 수고를 다해서 상가의 분위기와 신앙의 상태가 달라지도록 최선을 다해 상가를 보살펴 주며, 슬픈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입관 준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의 이다.

이는 교회의 경조부(상례) 내 간사(염사)가 처리해 준다. 만일 교회가 적어서 상례부가 없다면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장의사에 부탁하면 입관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해 준다. 입관이란 염습한 시신을 관 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함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보통 운명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해야 한다. 그리고 입관식을 올릴 때는 다음 세 가지와 같은 입관 상태에서 해야 한다.

①시신에 수의를 입혀 입관한 다음 관 뚜껑을 덮어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가 있는 관보를 씌우고 한다.

②관 뚜껑은 덮으나 나무 못은 박지 않고 결관하지 않는다.

③관 뚜껑을 덮지 않고 열어놓고 예배를 드린 후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가 있는 관보를 씌운다.

위의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가 가장 좋으리라 생각되지만 상주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한다.

 


<입관식 예배식순>
개식사 : 집례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610 장 : 다같이
기도 : 맡은이
성경봉독 / 베드로전서 2:11 ∼ 12 : 집례자
고인의 약력 : 맡은이
조가 : 맡은이
위로의 말씀 : 집례자
기도 : 집례자
조사 : 맡은이
찬송 489 장 : 다같이
축도 : 목사

입관식이 끝나면 병풍을 세우고 관을 놓고 관 앞에 작은 상을 놓아 사진과 유품을 올려놓거나, 관이 보이지 않게 병풍 뒤에 둘 수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분향은 하지 않고 헌화(獻花)를 한다. 그러므로 일반 조문객들을 위해 헌화할 꽃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기독교 집안에서도 일반 조문객을 위해 분향 준비를 하기도 한다. 이것은 종교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서로 협조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3)출관식(出棺式)

출관식은 조문온 조문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인정하게 하고, 인간의 무능함과 유한성을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모든 예식이 그러하겠지만 출관식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고인의 모든 흔적(모습)이 집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에 예식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첫째로는, 모든 순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유족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어야 하며,
셋째는, 이 의식에 참석하신 분들게 신앙의 확신과 선교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예식이 진행되어져야 한다.

<출관식 식순>
개식사 : 집례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493 장 : 다같이
기도 : 맡은이
성경봉독 / 고후 5:1-9 : 집례자
위로의 말씀 : 집례자
기도 : 집례자
찬송 488 장 : 다같이
축도 : 목사

 



①장례일 : 재래의 전통상례에 있어서 장례일은 짝수 일을 피하고, 홀수 일은 3, 5, 7 일로 정했으나, 근래에는 대개 3일장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러한 일수에는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주일이 겹칠 때에는 2일 혹은 4일장으로 해도 무방하다.

②장지 : 교회 묘지, 공원 묘지, 선산을 이용해도 무방하며, 화장을 한다고 해서 성서에 위배되는 일은 아니다.
합장할 경우에는 앞에서 보아 좌측에 남자, 우측에 여자로 한다. 토질은 물이 나지 않고 방향은 어느 곳이나 상관 없으나 남쪽을 향한 곳이면 더 좋고,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은 북쪽을 향하여 바라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방향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한다.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장지의 위치를 높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나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낮은 곳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뒷배경이 든든하니까 아래 낮은 곳이 더 좋다는 것이다.

③약력 소개, 조사, 조가 : 고인의 선행이 조객들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나, 고인이 즐겨불렀던 찬송을 다시 부름으로 고인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순서를 가진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유족들에게는 위로가 되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전도와 신앙적 결단의 기회가 되도록 집례자가 유도해 의식을 진행시킨다.

④순서 ; 운명하는 장소는 사고로 인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가 집이나 병원이지만,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다.
자택이나 예배당, 병원, 구민회관,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다.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앞 또는 좌우로 앉거나 서게 하고 집례자는 관 앞 적당한 장소를 선택하는데 모인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예식을 집행해야 한다.


고인의 호칭은
"고 000직분명(목사, 장로, 권사, 집사)"을 부르고 직분이 없는 자에게는 "고 000성도"로 통일하는 것이 좋다. 믿지 않고 돌아간 후 가족이 원할 때에는 연령에 따라 선생님, 어른,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 등 고인에 따라서 적절한 호칭을 사용할 수가 있다.
의식 순서는 집례자 또는 때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만 대개는 개식사, 기원(신앙고백, 예배), 찬송, 말씀, 축도 후 장지와 그 외의 모든 것을 알리는 광고를 한 후 장지로 떠난다.
조가나 조사가 있을 때에는 조가는 말씀 전에, 조사는 말씀 후에 하는 것이 좋다. 의식의 분위기를 엄숙하게 할 수 있으며, 조사 전에 약력을 소개하면 조사를 듣는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는 데 좋을 것이다.

⑤운구 행렬 : 출관식이 끝나면 장지에 가지 못하는 조객들은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운구가 떠날 때까지 이를 지켜본다.
운구 행렬의 순서는 고인의 영정, 집례자, 영구, 이어서 상제들과 조객들이 뒤따르게 된다. 영구는 머리에서부터 나오도록 모신다.
이때 성도들은 밖에서 찬송을 계속 부르며 뒤에 따르도록 한다. 영구차가 있는 곳에 영구가 도착하면 고인의 사진을 든 사람을 관이 들어갈 바로 앞에 서게 하고 관을 영구차에 실으면 사진은 영구차 맨 앞 좌석에 앉게 하며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앉아서 떠난다. 이때 집례자도 함께 타야 한다.

⑥선두차 : 승용차에 검은 띠를 두르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영구차 앞에 간다. 이것을 선두차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선두차를 부나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영구차는 누구나 다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거리를 지나도 영구차 운전기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면 편리하게 빨리 장지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굳이 선두차를 두지 않아도 된다.


 

4)하관식(下棺式)

하관식은 죽은 사람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 돌아와야 하는 슬픔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기 때문에 격려와 용기를 주어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내려오도록 해야 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었으나 육신의 부활에 대하여 믿는 자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종말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제림과 세상의 종말과 심판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무덤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주의 재림 때 성도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과 고인의 영광과 평안의 세계로 옮겨갔다는 말씀을 통해 확신하게 하고 위로 받게 하며 안정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세상 종말이 이루어질 최후의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면서 먼저간 사람을 만날 기대 속에 신앙 생활에 힘쓰도록 전해야 한다.
그러나 고인이 믿지 않고 돌아간 경우라면 우리의 가는 길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내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며, 고인의 영혼이나 구원을 위한 기도나 말씀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생사는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며, 구원의 역사도 우리의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가)취토
하관식이 끝나면 취토(取土)를 하게 되는데, 취토는 열어놓았던 횡대를 다시 덮고 관 위에 흙을 덮는 것을 말한다. 흙이 관 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가장 슬프기 때문에 식순에 넣으면 취토를 할 때 유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식을 마치고 행하는 것이 좋다. 취토 전에 꽃이 있으면 먼저 헌화한 후 할 수도 있으며, 그 순서는 주례자가 먼저 한 후에 유족, 친척, 친지, 조문객순으로 한다.

취토할 때 집례자가 기도한다.

<하관식 식순>
개식사: 집례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찬송 485 장 : 다같이
성경봉독 / 고전 15:35-49 : 집례자
위로의 말씀 : 집례자
기도 : 집례자
찬송 480 장 : 다같이
축도 : 목사

(나)성분
하관식이 끝나면 일하는 분들이 작업을 시작할 때 계속 찬송을 부르며 그들을 격려한다. 전통 장례식에서는 봉분이 완성되면 성분제를 지내게 된다. 이때 종교가 같지 않은 사람은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관 후 바로 떠나지 말고 흙이 어느 정도 채워질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예의다.

(다)묘비
묘비는 묘 앞에 세워 누구의 묘인지를 나타내는 표시이므로 아담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표시 방법에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앞에서 돌아가신 분의 직분과 이름, 그리고 부활에 관한 성구나 평소 고인이 은혜받은 성구를 기록하고, 뒤에 자손의 이름, 옆에는 생년월일과 죽은 연월일을 기록하게 된다. 부부 합장일 경우 묘의 전면에서 보아 왼쪽이 "남편",
오른쪽이 "아내"의 생년월일과 돌아가신 연월일을 기록한다.

(라)마무리
한 사람의 장례(매장) 절차는 임종에서부터 하관까지로 마치게 된다.
유가족 대표나 집례자가 "모든 순서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 가운데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협력해 주신 조문객들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기도해 주시라"는 부탁의 말로 모든 의식을 마친다.
장지에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면 식사를 하면서 위로를 하기도 하며, 상주들은 조문객들을 찾아다니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의식은 마쳤지만 유족들은 묘비, 묘테, 잔디, 그 외의 일이 남아 있지만, 첫 성묘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당일에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하산한다.

Q) 기독교 장례, 매장이 옳은가요? 화장이 옳은가요?

A) 다른 나라에 비해 인구 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매장보다 화장을 하는 빈도가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도 화장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 문제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을까요? 아쉽게도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일부 사람 가운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죽음과 장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 반드시 매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요셉은 타향 애굽 땅에서 애굽 총리로 살다 죽으면서 훗날 자신의 유해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으로 메고 올라갈 것을 요구합니다(창 50: 25). 이 요셉의 경우를 기독교 장례의 모범으로 삼으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명을 받기 이전 애굽 땅에서 일어났던 이 상황을 그대로 적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만일 요셉의 장례 방식을 기독교 장례의 모범으로 권장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모세가 창조주 하나님께 직접 받은 613가지 율법 가운데 요셉의 장례 방식을 따르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있었어야 겠지요. 하지만 그런 명령이나 권유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다만 죽을죄를 지어 나무 위에 달려 처형당한 사람의 시체는 밤새도록 나무 위에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해야 했는데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았기 때문이라는 규례가 있습니다(신 21: 22-23). 사도 바울은 이 율법을 인용하면서 나무에 달려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음을 분명하게 전합니다(갈 3:13). 그리스도의 죽음은 유대 법으로 볼 때 그 어떤 죽음보다 처참한 저주였던 것입니다.

애굽 장례가 시체를 방부 처리한데 반해 팔레스틴에서는 보통 시체를 방부 보존하지 않고 죽은 지 수 시간 안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예수의 시체도 그렇게 장례 되었습니다. 유대 관습에 따라 관도 없었고 시체는 씻어서 향유를 바르고 세마포로 급하게 쌌습니다(요 19:40). 저주 받은 시체를 그대로 두어 여호와께서 주신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지요(신 21:23).

하지만 부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으며 이것이 기독교 장례 풍습으로 규정된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이런 전통 규례를 신앙적으로 권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율법조차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갈 3:12).

둘째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런 요셉의 장례법이 권장되거나 실행되어 왔고 교회도 그 방식을 따랐다는 교회사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효자 요셉은 애굽의 관습을 반영하여 아버지 야곱의 죽음에 시체 부패를 막기 위해 40일 동안 향을 넣고 70일 동안 곡(哭)하였으며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큰 소리로 울며 거기서 관습대로 7일 동안이나 다시 애곡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땅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이 이 울음 소리를 듣고 "애굽 사람들이 크게 애통하는 소리"라고 했지요(창 50: 2-11). 고령의 147세에 사망한 야곱의 죽음에 대한 이 같은 풍습과 애곡은 크게 애곡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역사상 전통적 교회의 장례 풍습이나 한국 교회의 장례 풍습에 비할 때 분명 낯선 풍경입니다.

이 같은 성경과 역사의 교훈을 살펴볼 때 기독교 장례에 있서 어떤 중요한 규례가 내려왔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매장이냐 화장이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비참하게 화형 당한 기독교 순교자들도 많았습니다. 성경이 규정하지 않는 이상 매장이냐 화장이냐의 여부는 중요하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부자의 죽음이든 거지 나사로의 죽음이든 화려한 죽음이든 비참한 죽음이든 십자가 달린 저주 받은 강도의 죽음이든 부활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 자체가 기독교의 중요한 본질이 아닐뿐더러 이 땅은 영원히 안식할 땅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 집을 떠난 것처럼 갈대아 우르든 하란이든 가나안 땅이든 죽음의 장소나 매장지가 어디인지 그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이 세상의 나그네로 본향을 그리워해야 하겠지요.

 
▲조덕영 박사.

따라서 매장이든 화장이든 자기 견해가 옳다고 우기면서 특정한 장례 운동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조금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 모든 일이 땅의 일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 것처럼 장례 방식이 신앙적 규례는 아니나 장례 문제에 있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아름다운 약속은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살아생전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께서는 언론에 공개적으로 자신은 화장할 것이라 여러 번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측과 유가족 중 누구의 주장으로 매장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묘지 부족으로 시달리는 한반도 상황을 염려한 옥 목사님의 배려요 신학적으로 화장이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보여준 옥 목사의 깊은 생각을 교회는 깊이 생각했어야 합니다.

따라서 화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사후 화장을 하겠다고 (공적으로) 공언했던 옥 목사를 매장한 것은 교회가 생전 옥한흠 목사의 의도를 간과한 조금은 지혜롭지 못한 결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경우를 헤아리지 못한 결정이었던 것이지요.

인생은 흙이요 잠간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불과합니다. 매장이든 화장이든 연연할 필요가 없으며 주님 안에서 신령한 부활을 소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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