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초대 교회, 그들은 왜 그토록 '성경'에 집착했나?
로마 군인들이 들이닥칩니다. 집 안의 기독교인들은 금이나 은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들이 벽장 깊숙한 곳, 땅속 항아리에 감추는 것은 낡고 해진 양피지 두루마리들. 바울이라는 사람이 보낸 편지, 마가가 기록한 예수의 이야기… 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이 '종이 뭉치'를 지키려 했을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은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성경'은 책장에 꽂힌 종교 서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할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은 박해와 탄압 속에서, 초대 교인들이 왜 그토록 성경에 집착했는지, 그들에게 성경은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한 권의 책'이 아니었던 성경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한 권으로 묶인 신구약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초대 교인들이 '성경'이라 부르던 것은 여러 종류의 두루마리들이었습니다.
- 구약성경: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이 가장 중요한 경전이었습니다.
- 사도들의 편지: 바울, 베드로, 요한과 같은 사도들이 각지의 교회에 보낸 편지들이 소중히 필사되어 교회들 사이에 공유되었습니다. 이 편지들은 신앙생활의 구체적인 지침서 역할을 했습니다.
- 예수의 행적: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한 '복음서'들이 하나둘씩 기록되어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아직 '정경(Canon)'으로 확정되지 않은, 여러 문서의 모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 흩어진 문서들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피로 지켜낸 '하나님의 말씀'
- 세상에 맞서는 '대항 서사'(Counter-Narrative): 로마 제국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에 의한 평화라는 거대한 이야기로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황제는 신이었고, 로마의 역사는 영광 그 자체였죠. 기독교인들은 이 거대한 세상의 이야기에 맞설 그들만의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 역할을 했습니다. 세상의 왕이 아닌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로마의 평화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대항 서사'를 제공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로마의 세계관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였습니다.
- 박해 속에서 길을 알려준 '내비게이션': 교회 건물도, 신학교도, 통일된 조직도 없던 시절, 그들에게 사도들의 가르침은 유일한 지침이었습니다. 어떤 가르침이 옳고 그른지,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고난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하는지 모든 해답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칠흑 같은 박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그들에게 유일한 등대이자 내비게이션이었습니다.
-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경전'의 탄생: AD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혹독한 '대박해'를 시작합니다. 그의 박해 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성경 몰수 및 소각 명령'이었습니다. 로마는 기독교 신앙의 심장이 바로 성경에 있음을 정확히 간파했던 것입니다. 이 위기 앞에서 교회는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어떤 책은 내어주더라도, 어떤 책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가?" 이 고통스러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비로소 어떤 문서가 정말로 중요한 '정경(Canon)'인지 결정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을 없애려던 로마의 박해가 오히려 교회가 '신약성경'의 목록을 확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입니다.
초대 교회에 성경은 책장에 꽂힌 '종교 서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박해받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며,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지' 증명하는, 피로 지켜낸 정체성이었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성경을 손에 넣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지는 이 책의 매 페이지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믿음의 선배들의 눈물과 기도가 스며있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성경을 그저 '읽는 책'이 아닌, '살아내야 할 삶'으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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