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딤후 3:1-5, 12-15절 말씀
제목 : 누구에게서 배웠나요?
찬송 : 204장
https://www.youtube.com/watch?v=WzTVIc6rsvQ / 영상은 예배후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풀버전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꼭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놓여있는 안경을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안경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안경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 안경은 사실 미술작품이 아니라 이번 가을 대학입시를 준비중인 “티제이 카야탄” 이라는 17세 소년의 장난이었습니다.
그는 "처음 도착했을 땐 거대한 미술관에 놓인 작업물과 그림을 보고 꽤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몇몇 '예술'은 우리에게 전혀 감탄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며 "우린 회색 담요 위에 박제 동물이 올려져 있는 작품을 보고 정말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인상적으로 느끼는지 의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후 그와 친구들은 '사람들은 미술관 안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응시하고 예술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그들의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안경을 바닥에 두고 멀리 떨어져 지켜봤다.
그러자 곧 방문객들은 안경을 둘러싸 '관람'하고, 그 '작품'과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자 그는 그 장면 자체를 촬영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포스트모던적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부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권위도 없고, 무엇이든 의심하고 비판하는 시대가 포스트모던입니다. 기존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합니다.
기존에는 영웅이 탄생하면 모두가 기뻐하고 존경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는 “그래? 그래서? 라는 식입니다.
자연에 대한 생각도 다스리고 정복하는데서 이제는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외된 소수민족이나 동성애자들같은 소외계층은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반면 인간이 굶주리고 희생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반휴머니즘적인 사상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입니다. 아니, 우리세대를 지나 다음세대 아이들이 자라가야 하는 세상이 바로 이러한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세대를 바르게 세워놓지 않으면, 무책임하게 이 시대를 자녀들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이 세대가 어떠한 세대인지를 깨닫게 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후서는 다소 강한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대상이 첫째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이지만, 경건한 신앙의 사람들에게 실제적이고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격려와 위로가 되지만, 미지근한 사람들에게는 가슴이 뜨끔한 말씀이 많습니다.
먼저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세는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초림하신 때부터 재림때까지의 기간을 말세라고 한다.
바울은 말세는 “고통하는 때”라고 시작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말세라고 말씀합니다. 그때는 평안과 부요가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시기는 살기 좋아진 것 같고, 편리해 진것 같습니다. 고통이 아닌 것 같고 즐거움 인듯합니다.
겉으로는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여 우리의 삶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데, 영적, 정신적으로는 더 심한 고통의 때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데도 우리에게 힘든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왜 고통의 때인가? “왜냐하면(가르)”이라는 접속사가 2절 앞부분에 붙어있습니다. 고통의 때인 이유를 바울은 19가지로 길게 나열하며 이야기합니다.
“자기사랑, 돈을 사랑, 자랑, 교만, 비방, 부모를 거역, 감사하지 아니함, 거룩하지 아니함, 무정함, 원통함을 풀지 아니함, 모함함. 절제하지 못함,사나움,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함, 배신함, 조급함, 자만함, 쾌락을 사랑함, 경건의 능력을 부인함.”
어느것도 부정할수 없는 시대아닙니까? 이제 우리의 시간은 적게는 일이십년, 많게는 오륙십년이지만, 우리아이들이 살아야 할 시대는 80년, 100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물려주어야 할 이 시대가,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사랑하며,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시대가 바로 이러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게됩니다.
가룟유다도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바로왕도, 헤롯왕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 불쌍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가장 오래살았던 ‘므두셀라’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후 삼백년을 하난미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65세를 살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3-24)라고 말씀합니다. 므두셀라는 자기 아버지가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매일 매일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보았던 사람이지만 자신은 남고 아버지는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았습니다. 라멕은 노아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가 시작됩니다.
므두셀라는 살아가면서 정말 보지 말아야할 것, 보지 않았으면 마음편할 것들을 정말 많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아홍수가 시작되던 해에 9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성경은 그의 행적에 대해 아무것도 기록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그는 배우려고도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므두셀라의 모습은 디모데 후서 3장 5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오늘 우리중에도 혹시 이러한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겉모습만 그럴듯한 신앙인인데, 예배당만 왔다갔다하지는 않습니까? 경건한 모양은 갖추고 있는데, 말씀의 능력은 부인하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수없이 듣는데, 삶의 변화는 전혀 없는 분들에게 경고합니다.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하십니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돌아서라'(아포트레포)"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포트레포'라고 합니다 "떠나다,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그들과 섞이지 말고, 혼합되지 말고, 그곳에서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기지 말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경건의 모양만 있습니다. 그 안에 능력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겉모습은 있는데, 믿음이 아닌, 등록만 되어 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나오면서도 그 능력을, 복음과 말씀의 영향력을 전혀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겉모습만 형식만 가지고 있는 성도 입니다. 이런 교인, 성도들이 많아지면서 교회는 커졌지만, 성도의 수는 많지만 영향력을 끼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그룹, 사람, 모임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이것이 말세를 사는 성도들의 지혜입니다.
영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
로마서 12장 2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그 신앙은 누구에게 배우셨습니까? 그리고, 이제 누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까?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야, 참 사는 게 힘들지? 세상은 너무나 추하고 더럽고, 악한 길로 달려가는 것을 보니 힘이 나지 않지?
그래, 하루 하루가 힘들지? 신앙생활이 힘들지? 믿음대로 살려고 하니까 손해보고, 더 일이 안되고, 더 힘들어졌지? 그래. 그건 네가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했기때문이야” “그런 걸 박해라고 하는거야. 그거 받아도 이상한 게 아니야, 네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13절
“악한 사람들, 속이는 자들? 그래, 그들은 더욱 악해질 거야, 그래서 더 많이 속이고 속기도 할 거야.. 그래 그들은 그렇게 살 거야.”
그리고 14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살지라도, 그들은 악에게 악으로 갚고, 서로 속이고 속더라도...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내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너의 부모님은 너를 그렇게 가르치 지 않았다. 나는 너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너를 위해 기도한 그 기도, 잊지 말아라. 너 누구에게 배웠는지 기억해라. 너를 가르치기 위해 흘렸던 그 눈물들 기억해라.. 바울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너를 위해 기도했던 외할머니의 기도 들리지? 너를 위해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했던 엄마의 기도소리 들리지? 너 그거 알지? 그래, 바로 그분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네가 있는거야. 그거 외면하지 마라!
여러분의 그 신앙은 누구에게 배우셨습니까? 그리고, 이제 누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까?
오늘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시대는 평안한 시대가 아닙니다. 네로 황제가 살았던 때가 AD 55-68년입니다. 디모데 후서는 네로의 박해가 시작된 64년 이후 쓰여 습니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냥 죽이고 고문하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아예 잔인하게 농락하며 즐기기 시작했다. 짐승의 가죽을 둘러씌워 사나운 개들에게 찢겨죽게도 했고, 산채로 십자가에 매달아 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불에 잘 타는 겉옷을 입혀 횃불처럼 나무기둥에 묶어 세운 다음 날이 어두워지면 불을 붙여 밤을 밝히기도 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신앙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성도들의 고통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두컴컴한 지하감옥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2012년 2월, 강영우 박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동양인 최초로 시각장애인이면서도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까지 지낸 분입니다. 2011년 말 췌장암 말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25만달러(약 3억원에 가까운 돈을 장학기금으로 국제로터리재단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이 자신이 40년전 국제로터리재단의 장학생으로 뿁혀 피츠버그대로 유학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갚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진 것 다 주고 떠나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배움의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배움의 은혜를 갚고 계십니까? 그 은혜는 다음세대를 가르침으로 갚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고 교사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을 지금까지 지킬 수 있도록 자랄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선생님은 누구입니까? 혹시 그분이 아직도 교사로 섬기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시 나를 가르치셨던 그분이 아직도 내 자녀를 가르치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야 할 그 자리에 그 선생님이 아직도 교사직을 이어갈 다음타자가 없어서 여전히 그곳에서 눈물흘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배움의 은혜는 가르침으로 갚아야 합니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자신을 이끈 3명의 은인으로 유종현 코치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 그리고 어머니를 꼽았다. 가르쳐준사람, 라이벌, 가족을 꼽은 것이다. 그중에서 피겨스케이트를 권유했던 유종현 코치를 으뜸 은인으로 꼽았습니다.
어린시절, 고모의 낡은 스케이트를 신고 놀고 있는데 세계적인 선수로 클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피겨스케이트를 권유한 것입니다. 만약 유종현 코치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재능은 발굴되지 못했을 것이며, 오늘의 김연아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사울 왕 시대에 김연아 같은 국민영웅이었다. 그가 골리앗을 물리쳤을때 온 이스라엘은 열광했다. 누가 다윗을 발굴했는가? 그를 알아본 것은 하나님의 눈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삼상 16:1, 개정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왕을 세운 사람입니다. 왕국의 토대를 세운 사람이기에 국가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왕을 세운 그의 첫 작품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왕은 사람들의 칭찬에 점점 익숙해가면서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특히 다윗이 등장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보다는 다윗의 경쟁에서 어떻게 하면 그를 쓰러뜨릴까, 머리 굴리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믿음과 내면은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었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가장 마음아파한 사람은 사무엘입니다. 자기 손으로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 왕이 성공해야 하는데 몰락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좌절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격려하시며 무엇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한 왕을 보았다" 라고 외칩니다.
누구의 아들 중에서요? 사람들이 외면하고 보잘 것 없다고 하는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중에서. 이새의 아들이 다윗을 보고 왕을 보았다고 외칩니다. 그는 말씀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녀들은 말씀을 품고 있습니까? 말씀을 전하는 선생님들을 존귀히 여기십니까?
15절 말씀입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좋은 교사, 좋은 부모는 성경을 가르치는 부모입니다. 유대인들은 5세부터 13세까지 말씀교육을 중점적으로 시킵니다. 그래서 사춘기가 되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기본이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좋은 부모는 금요기도회, 수요예배에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오는 부모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는 부모, 그분이 자녀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교사헌신예배를 드리는 모든 교사들, 청년들, 그리고 부모된 모든 성도님들을 향해 당부드립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배우셨습니까? 그 배움의 은혜를 갚고 계십니까?
한때 2011년, ‘레디컬’이라는 책이 두란노에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습니다. “과격한, 급진적인”이란 뜻입니다.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이 미국교회를 향한 질타가 들어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대형교회 인 브룩힐즈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한 데이비드 플랫 목사가 자신이 성공신화에 매여 있음을 깨닫고 나서 다시금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경험한 드라마틱한 과정을 솔직하게 써내려간 책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때에 우리들도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살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이나 “잘되는 나”, “최고의 삶” 정도로만 복음을 믿어왔다.
복음을 나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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